대구,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현장은 끝내 이용 당했다.

이국환l승인2020.05.26l수정2020.07.0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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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현장은 끝내 이용 당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93) 할머니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취재진들이 대거 몰리면서 기자회견 장소가 두 차례나 바뀌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할머니는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 거취에 “자기 사리사욕 챙기려고 국회의원이 됐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25일 오후 2시 대구시 수성구 인터불고호텔 1층 즐거운홀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회견장은 취재진이 대거 모여들면서 두 차례나 바뀌었다. 원래 이 할머니가 평소 자주 가는 수성구의 한 찻집이었으나 수용 인원이 30여명에 불과해 100명 넘는 취재진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오전 6시40분께 SBS 취재진이 가장 먼저 찻집 건물에 도착했다. 오후 12시까지 100명 이상의 취재·촬영기자 등이 모여 건물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몰려드는 인파에 주최 측 관계자는 기자들을 1층 바깥에 두고 할머니만 2층 베란다에서 발표하는 안, 근처 공원으로 옮기는 안 등을 제안했다. 현장에선 ‘못 들어가면 어떡하느냐’ 등의 기자들 우려가 나왔다. 찻집 문 옆엔 기자들이 붙여 놓은 선착순 명단도 6장이 붙었다.

장소는 30분 새 두 번 바뀌었다. 인근 수성호텔로 먼저 변경돼 취재진들이 대거 이동했으나 다시 인터불고호텔로 장소가 바뀌어 우르르 이동하는 진풍경이 두 차례나 벌어졌다.

열띤 취재 경쟁 때문에 질문할 기자도 ‘뽑기'로 정했다. 회견 준비 측은 봉투 5개에 각각 종합·지역일간지, 종합편성채널, 지상파, 인터넷·잡지·주간지, 외신 등이라 쓰고 봉투 별로 기자 명함을 모았다. 이후 집회 사회자가 각 봉투에서 명함을 뽑아 해당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줬다. 매체별로 한국경제신문, 연합뉴스TV, MBC, 동아일보, 요미우리신문 순이었다.

보수 성향의 유튜버들도 각자 실시간 중계용 카메라를 들고 기자들과 함께 움직이며 유튜브 댓글 반응을 살폈다. 호텔 2층 로비에선 시민단체 활빈단 활동가 2명이 “수요집회에 이용당했다는 이용수 할머니 폭로 충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당선에 “배신” 주장

오후 2시40분께 입장한 이 할머니는 “그동안 보니 생각하지 못한 것(의혹)들이 많이 나왔다. 그것은 검찰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회견은 1시간가량 진행됐다.

이 할머니는 먼저 “공장 갔다온 정신대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는 많이 다르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정의연의 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정신대’ 단어를 문제 삼았다.

이 할머니는 “30년 동안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위안부) 증언을 했는데 정신대대책협의회란 곳을 몰랐다. 제가 1992년 6월25일 신고할 적에 윤미향은 간사였다. 29일 모임에 오래서 갔더니 어느 교회였다. 일본의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천엔인가 줬다면서 100만원씩 나눠줬다. 무슨 돈인지도 몰랐는데 그때부터 모금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정대협 명칭에 대해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는 밀가루로 반죽해서 만들어서 빚어놨으면, 속은 맛있고 귀한 걸 넣어야 안 되나. 근데 그 속은 위안부입니다. 30년을 해도 그걸 몰랐고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왜 저거(정대협)가 정신대 할머니랑 합세해 쭉 이용해 왔다”고도 했다. 정의연 이름에 붙은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서도 “내가 왜 성노예”냐며 꾸짖었다.

용어 비판은 회견에서 주요하게 다뤄졌지만 오해도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정신대와 위안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당시 관련 논문이나 보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1990년 정대협이 설립될 당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드러내는 피해자가 없었기 때문에 단체 이름에 정신대란 단어가 쓰였다.

이후 명확한 용어 사용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지면서 ‘종군 위안부’가 등장했지만 종군이라는 말에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 ‘위안부’로 쓰였다. ‘아시아연대회의’는 1993년 위안부 또한 실태를 은폐하는 용어라 판단해 ‘성노예제도’라고 표기했고 UN은 2014년 이를 공식화했다. 정의연은 이를 2016년부터 사용했다.

이 할머니는 피해 경험도 밝혔다. 그는 “방(위안소)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 고문을 하고 갖가지 칼로 몸을 긁어서 이렇게 죽여놨다. 방에 군인 하나가 앉았는데 안 들어가니 와서는 머리를 질질 끌고 가서, 자물쇠 달린 광을 열더니만 확 밀었다. 허리를 군홧발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찢어지고 아프고. 잘못한 거 없지만 그래도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인 출마에 대해 “30년을 하고도 아주 하루 아침에 배신했다. 배신당한 제가 너무너무 분했다. 그래서 이 일이 일어났지 다른 건(의혹)은 아무것도 몰랐다”며 “자기가 사리사욕 챙기는 거 아닙니까. 지네(윤 당선인) 마음대로 했으니까 자기들이 한 일이지, 어떻게 하란 말을 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의원 사퇴를 바라느냐’는 질문엔 “내가 할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 것을 두고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라냐. 그거 아니라도 수십만 가지가 있는데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린다”며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받아먹었다”고 주장했다.

이 할머니는 또 “30년 동안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인데, 일본 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라며 “이거를 30년하면서 그(수요집회 등에 나오는) 학생들까지 고생시켰다. 학생들 돼지 털어서 나오는 돈을 받아 챙겼다. 이래서 어제 한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뜻을 이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을 이어가겠다며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이와 관련 한일 청소년에 대한 역사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 학생들도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하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며 “억울한 누명을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우리 학생들이다. 늦게까지 사는 게 죄입니까. 왜 이리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라 밝혔다.

이국환  Ecohk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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